조국해방전쟁에 대하여
미제는 1950년 6월 25일 조선전쟁을 도발하였습니다.
이날은 일요일이였습니다.
미제가 조선전쟁도발날자를 일요일로 택한데는 전쟁도발자로서의 저들의 정체를 숨겨보려는 교활한 음모가 깔려있었습니다.
당시 미군사고문단 단장이였던 자는 25일은 일요일이라는것, 그리스도교국가인 미국이나 한국은 일요일을 안식일로 정하고있으므로 미국이나 한국이 일요일에 전쟁을 개시하였다는것을 믿을 사람은 하나도 없을것이라고 뇌까렸습니다.
조국해방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이후 민주주의진영과 제국주의진영과의 처음으로 되는 대결전이였습니다.
미제가 저들의 군대만이 아닌 방대한 추종국가군대를 조선전쟁에 투입하였다는 그 사실자체가 조선전쟁의 치렬성과 국제적성격을 보여주는것입니다.
조국해방전쟁시기 수많은 전투들이 벌어졌으며 우리의 인민군군인들은 여러 전투들에서 세계를 놀래우는 기적들을 창조하였습니다.
주요전투들가운데는 전쟁개시 3일만에 적의 수도를 타고앉은 서울해방전투, 현대포위전의 빛나는 모범을 창조한 대전해방전투, 4척의 어뢰정으로 바다의 《움직이는 섬》이라고 하던 적의 중순양함《볼티모》호를 격침시키고 경순양함 1척을 격파하여 세계해전사에 류례없는 위훈을 아로새긴 주문진해상전투, 조선인민군과 미제침략군과의 첫 격전으로서 불과 몇시간동안에 미제침략군 제24보병사단의 선견대를 완전히 괴멸시킨 오산전투, 4문의 포로 5만여명의 대병력과 수백척의 함선, 약 1 000대의 비행기와 맞서 싸우며 적의 상륙을 3일간이나 지연시킨 월미도방어전투 등이 있습니다.
조국해방전쟁시기 수많은 영웅들이 배출되였습니다.
2중영웅을 포함한 공화국영웅들의 수는 600여명에 달합니다.
그들가운데는 전쟁시기 제일 처음으로 적의 화점을 막은 장태화영웅, 적의 통치기구의 아성인 《중앙청》에 제일먼저 공화국기발을 날린 고현빈영웅, 수류탄을 입에 물고 육탄이 되여 적들속에 뛰여든 강호영영웅, 온몸에 심한 부상을 입고도 최후의 힘을 모아 턱으로 중기관총의 압철을 눌러 적들에게 무리죽음을 안긴 조군실영웅, 공화국 첫 녀성전투비행사로서 많은 전과를 거둔 태선희영웅도 있습니다.
가렬처절했던 조국해방전쟁은 1953년 7월 27일 조선인민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1953년 7월 27일 10시 미제는 저들의 패배를 인정하는 정전협정에 조인하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당시 《유엔군》사령관이였던 클라크는 자기가 《력사상 승리하지 못하고 정전협정에 조인한 최초의 미군사령관》으로 되였다고 하였습니다.
조국해방전쟁의 승리의 요인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와 조선인민군 군인들과 조선인민이 발휘한 숭고한 애국주의 그리고 대중적영웅주의입니다. 그 가운데서 결정적요인은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입니다.
조국해방전쟁승리의 세계사적의의는 미제의 세계제패전략실행을 저지시키고 새로운 세계대전을 막아 인류평화를 수호한데 있습니다.
조국해방전쟁은 위대한 수령의 두리에 철통같이 뭉쳐 불사신처럼 일떠선 군민의 사상의 힘, 대중적영웅주의의 위력을 당해낼 힘은 세상에 없다는 철리를 력사에 아로새기였습니다.
조선인민과 인민군장병들은 위대한 전승세대가 발휘한 영웅적투쟁정신과 기풍을 굳건히 계승하여 주체조선의 백승의 력사를 끝없이 빛내여나갈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