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 화 - 예술, 체육
조국을 노래한 가수
  우리 나라의 이름있는 예술인들중에는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 교원 인민배우 조청미도 있습니다.



  일본땅에서 태여난 그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하였지만 성악배우가 되겠다고 생각해본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그의 마음속에 성악가가 되고싶은 열망이 불타오르기 시작한것은 주체62(1973)년 여름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공연을 본 후부터였습니다.
  당시 우리 나라 만수대예술단의 공연은 온 일본에서 대성황리에 진행되였습니다. 그때 후꾸오까현에서 살던 조청미는 가극에 완전히 매혹되였고 조국에서 진정한 음악을 배워 성악가가 될 꿈을 안게 되였습니다. 
  그후 10월 그는 16살 애젊은 나이에 조국으로 귀국하여 당시 평양음악무용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철따라 무상으로 교복을 주고 학용품과 장학금까지 안겨주며 공부시켜주는 사회주의제도의 혜택속에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소원대로 관록있는 예술단체인 피바다가극단의 배우가 되였습니다.
  배우생활을 시작한지 몇해 안되던 그는 사람들속에서 널리 알려진 혁명가극 《피바다》의 주인공역을 맡아 수행하게 되였습니다.



  그후 나라에서는 그를 다시 모교에서 연구생으로 공부하도록, 외국에서 실습도 하게 해주었고 인민들의 사랑을 받는 가수로 내세워주었습니다.
  하기에 그는 친부모들도 철부지소녀의 공상으로밖에 여기지 않던 자기의 소중한 꿈을 이루어준 고마운 조국의 품을 선률에 담아 목청껏 노래하였습니다.
  《사회주의락원일세》, 《한없이 고마운 조국의 품》을 비롯하여 당시 그가 형상한 노래들은 사람들에게 깊은 여운을 주었습니다.



  이 나날에 그는 국내에서 4차례의 독창회를 진행하였으며 국제콩클수상자, 인민배우의 영예를 지녔습니다.
  조국의 품에 안긴 때로부터 근 50년, 이 나날 그의 가슴속에는 사회주의조국이 민족의 모든 아들, 딸들의 운명을 지켜주고 보살펴주는 은혜로운 품으로 새겨졌습니다.
  오늘 그는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에서 후대교육사업에 자기의 혼심을 다 바치고있습니다. 그가 키운 제자들중에는 나라의 관록있는 예술단체들에서 성악배우로 활약하고있는 제자들도 있습니다.



  이 나라의 천만아들딸들을 한품에 안아 보살펴주는 고마운 조국의 품을 오늘은 그가 키운 제자들이 자랑스럽게, 격조높이 구가하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