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화 《밑진 재판》
지주네 집 마당질을 할 때 있은 일이였습니다.마당우에 콩단을 펴놓고 농군들이 도리깨를 휘두르는데 어디선가 짹!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덕쇠아저씨가 내리치는 도리깨에 무엇인가 맞았던것입니다. 그래서 콩짚을 헤집고 보았더니 병아리 한마리가 납작하게 되여있었습니다.
농군들이 잠시 허리를 펴고 담배를 피우는 사이에 콩쪽을 쪼아먹느라고 기여들었던 병아리였습니다.
토방우에 돗자리를 펴놓고 비스듬히 누워있던 지주가 대뜸 눈살이 꼿꼿해서 큰소리를 쳤습니다.
《정신은 어디다 팔아먹고 일들을 하고있어? 이놈, 당장 병아리값을 물어내라.》
《령감님, 병아리가 몇푼값에 간다구 이놈저놈 하면서 야단을 치는거요?》
덕쇠아저씨는 슬그머니 밸이 뒤틀려 한마디 했습니다.
《뭐라구? 이놈, 그게 어떤 병아린지 알기나 하구 그래? 빨리 값을 내라.》
《제기랄, 병아리값이 얼만데요?》
《열다섯냥은 내야 한다.》
《아니, 열다섯냥이요?》
덕쇠아저씨뿐아니라 마당질하던 모든 농군들이 어이없어 입을 딱 벌리였습니다.
《여보 령감님, 무지한 농군이라고 너무 그러지 마시우. 글쎄 병아리 한마리를 열다섯냥씩 하는데가 어디 있단말이요?》
《야, 이 뻔뻔스러운놈아, 이 병아리는 그보다 값이 더 나가는거야.》하고 지주놈과 덕쇠아저씨는 옥신각신 다투었습니다.
《너무합니다, 너무해요. 게사니를 죽였대도 그렇게는 값을 내라고 못하겠수다.》
다른 농군들은 모두 덕쇠아저씨의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아무리 지주에게 얽매여 소작살이를 하지만 이런 생억지를 고분고분 들어줄수가 없었던것입니다.
지주놈은 값을 못물겠다는 덕쇠아저씨를 끌고 고을 원한테 찾아가 재판을 걸었습니다.
《이놈이 글쎄
지주가 말하자 원은 덕쇠아저씨를 아니꼽게 흘겨보며 물었습니다.
《여봐라, 네가 병아리를 죽인게 사실이냐?》
《소인의 도리깨에 맞아죽은것은 분명하오이다.》
덕쇠아저씨는 사실대로 말하였습니다.
《음, 그렇다면 왜 병아리값을 물지 않고 뻗대느냐?》
《글쎄 알맞는 값이라면 물어도 좋겠지만 열다섯냥이라니 이런 법이 어디 있소이까?》
《열다섯냥이라… 여보 령감, 열다섯냥은 너무 과한것같소그려.》
원이 지주에게 말했습니다.
《과하다니요? 그것이 지금은 병아리지만 죽지 않았다면 큰 닭이 될것이 아닙니까. 나는 엄지닭 한마리값을 밑질수 없습니다.》
지주는 이렇게 터무니없는 억지를 썼습니다.
《아니, 설사 큰 닭값을 쳐서 받는다 하더라도 열다섯냥이 될수는 없을것 같소이다. 기껏해야 두서너냥밖에 더 되겠사오이까?》
덕쇠아저씨도 굽히지 않고 맞받아 대답했습니다.
《아, 저놈 봐라. 그래도 아가리가 살았다고 응, 이… 이놈!》
지주는 덕쇠아저씨의 멱살이라도 틀어잡을것처럼 달려들며 소리를 쳤습니다.
《너희놈들같은 가난한 집 닭들이나 그렇지
원은 지주의 말을 듣고 머리를 끄덕거렸습니다.
《령감 말씀이 지당하니 어서 열다섯냥을 물어라.》
원은 덕쇠아저씨에게 호령하였습니다.
《가재는 게편이라고 원이 량반의 역성을 들어줄거야 뻔한 노릇이지.》
재판을 구경하던 농군들이 이런 말을 하면서 웅성거리고있을 때였습니다.
지금까지 대바르게 맞서던 덕쇠아저씨가 《그럼 열다섯냥을 물겠소이다.》하며 순순히 주머니를 풀고 열다섯냥을 내놓았습니다.
《저런, 좀더 뻗쳐나 보지 않구.》
《저렇게 고분고분하니까 농군들을 우습게 본단말이야.》
농군들은 그 처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웅성거렸습니다.
《버릇없는 무지막지한놈들 같으니라구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떠드는고.》
원은 화를 내며 농군들을 욕하였습니다.
지주는 덕쇠아저씨가 내놓은 돈을 집어 얼른 제 주머니에 넣으려고 했습니다.
이때 덕쇠아저씨가 웅글진 목소리로 말하였습니다.
《원님, 소인이 한마디만 더 여쭐 말씀이 있소이다.》
《무언고?》
자리를 뜨려던 원이 다시 제 자리에 앉으며 묻는 말이였습니다.
《소인은 병아리를 죽였지만 큰 닭값으로 열다섯냥을 물었소이다. 지주령감이 자기 말로 매일 좁쌀 한홉씩 먹여 살찌운다고 했은즉 병아리가 다 클 때까지 좁쌀을 먹인다면 몇말이나 되겠소이까? 아무리 적게 잡아보더라도 두말은 먹여야 할것이오이다. 그러므로 소인은 지주령감에게 좁쌀 두말 먹은 닭값을 치러준 셈이옵니다. 그렇다면 병아리가 죽은탓으로 지주령감네 집에 남아있을 좁쌀 두말은 누구의것이겠습니까? 그것은 갈데 없는 소인의것이 아니겠소이까? 좁쌀 한말에 열다섯냥 금새니까 두말에 서른냥은 소인이 받아야 하겠소이다.》
이 말에 원도 놀랐지만 지주는 얼마나 놀랐던지 얼굴이 흙빛이 되였습니다.
《옳소. 서른냥을 당장 물어내야 하오.》
구경하던 농군들이 한결같이 소리를 쳤습니다.
남을 터무니없이 걸어 많은 돈을 받아내려던 지주는 도리여 제가 놓은 올가미에 제 발이 걸려들어 꼼짝 못하고 돈 서른냥을 내놓고야 말았습니다.
《허허허…》
농군들은 모두 그 모양을 통쾌하게 바라보며 헤여져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