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침략의 발자취

미제침략선 《셔먼》호 격침기념비
대아시아정책실현에서 조선반도가 차지하고있는 전략적중요성을 간파한 미제는 지금으로부터 백수십년전 우선 미국은 1845년 《조선개방안》이라는것을 들고나와 조선의 《문호를 개방》하는것을 대조선정책의 기본목표로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1860년대에 이르러 남북전쟁이 끝나는것과 함께 조선침략을 더는 미룰수 없는 절박한 문제로 보고 본격적인 실천단계에 들어갔습니다.
이러한 침략정책실현의 맨 앞장에 침략선 《셔먼》호가 서있었습니다.
《셔먼》호는 1860년대에 미국에서 벌어진 남북전쟁시기 살인장군으로 악명을 떨친 셔먼의 이름을 따서 불리운 군함으로서 증기기관과 돛을 다 같이 쓴 당시로서는 가장 발전된 무장함선이였습니다.
《셔먼》호에는 4문의 포와 함께 수많은 총,환도,다량의 포탄과 탄약이 적재되여있었으며 90여명의 무장인원이 타고있었습니다.
더우기 선주로 알려진 프레스톤은 미국정부의 공식관리이며 장교였습니다.
《셔먼》호가
1866년 여름 평양을 목표로 대동강에로 기여든 미제침략선 《셔먼》호의 무장악당들은 불법상륙하여

미제침략선 《셔먼》호
조선정부는 미제날강도들의 비법적행위와 야수적만행을 규탄하고 랍치한 중군을 돌려보낼것과 제 소굴로 당장 돌아갈것을 강력히 요구하였습니다. 그러자 침략자들은 파렴치하게도 자기들이 물러가는 조건으로 쌀 1 000석과 많은 금, 은,인삼 등을 내놓을것을 요구하였습니다.저들의 강도적요구가 조선정부에 의하여 단호히 묵살되자 적들은
적들은 강가에 모여선 인민들을 향하여 총포를 마구 쏘아대며
이러한 《셔먼》호의 오만한 행위에 격분한
침략선 《셔먼》호의 침입사건은 철두철미

미제침략선 《셔먼》호의 대포
오늘도 평양의 대동강기슭에는 침략선 《셔먼》호에서 빼앗은 대포 두문이 악랄하고 파렴치한 미제의 침략적, 략탈적본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력사의 증견물로 남아있습니다.